본문 바로가기

중국이야기

둘째 임신으로 풍비박산난 중국인 가족 이야기

오늘은 중국에서 만난 한 가족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중국에는 80년대 초 산아제한정책(计划生育政策)으로 1가정 1자녀 정책을 시행하였는데요. 장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법으로 금지함으로써 많은 웃지 못할 사연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오늘 전달해 드릴 이야기는 80년대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중국 산아제한 정책 포스터 (출처: Wikimedia.com )

 

공무원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중국 청도 한 마을에서 공무원 부부가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도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죠. 중국 청도는 해안도시라 공기도 맑고 날씨도 많이 춥지 않아서 4개절이 여유롭고 행복한 도시 입니다. 무역도시로써 국제 무역도 활발하여 한국인도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구사하는 중국인들도 많습니다. 이 가족 역시 무역관련 공무원 부부였습니다.

 

비극은 둘째를 가지고 시작되었습니다.

둘째를 임신하고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정책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강제적으로 임신을 금지하고 있는지는 몰랐다고 합니다.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확인해 보니 아이를 출산할 경우 어마한 벌금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상의한 끝에 출산하기로 결심하였고, 아이를 둘째를 출산한 후, 출산신고를 하러 관련 정부기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벌금 10만위안 (한화 약 1,7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그 돈은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둘째의 출산은 중국 <중화인민공화국헌법>에 어긋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공무원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를 선택하고 이 부부는 철밥통 직장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억이 공기업으로 입사 가능한 기업이 없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블랙리스트에 있는 명단이기 때문에 노동부에 입사 신고를 하면 거절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직장도 구할 수 없고, 있는 돈은 둘째 출산 벌금으로 다 써버리고 살 길이 막막했다고 합니다.

 

용감한 결정은 해피앤딩!

그래도 작은 장사를 꾸리면서 그렇게 아이를 키웠고, 자란 아이들은 훌륭하게 자라서 집안은 현재 화목하게 지낸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무심함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사연 하나?

예전에 중국에 있을 때 만나던 여자친구 이야기 인데요. 호적에 올려져 있는 부모님과 실제의 부모님이 다르다고 합니다. 둘째를 출산하고 벌금을 낼 감당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여자친구는 시골에 보내져서 몰래 키우게 되었고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고 합니다. 중학생이 된 후,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결정한 것이 이모의 집으로 입양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다행히 입양에 성공하여 호적상 부모님은 이모와 이모부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정책이 낳은 비극인 것 같네요.

 

 

 

자녀는 하나로 족합니다.

산아제한정책에는 독자와 독녀가 결혼할 경우 자녀를 2명 가질 수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80년대에 출산되어 독자 독녀로 자란 아이들이 현재 20~30대가 되어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자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둘째를 당당히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자녀양육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인데요. 월급은 한국의 반 밖에 안 되는데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기 때문에 양육비가 한국보다 더 많이 들어갑니다. 임신하고 출산하는 대만해도 한화로 약 1,0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민간 우수기업에서는 출산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는 편이긴 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중국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둘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옛 사연들이 떠올라서 올려봅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