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참 무지했다.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대학교 입학자 명단을 보니 국가명 옆에 '印尼'라고 적힌 사람이 있었다. 당시 나는 "인도네시아? 그건 아프리카 어딘가에 있는 나라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국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우리 학과에 아프리카 사람이 있대!"
벌써 19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특히 유학생 기숙사에서는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외향적인 성격 탓에 혼자 밥 먹는 것을 정말 싫어했던 나는 다양한 외국인들과 함께 식사하며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은 주로 태국, 베트남, 그리고 한국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인 여자친구가 생긴 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인도네시아인 여자친구가 생겼다.
대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친구 그룹이 생기기 마련이다. 당시 나는 인도네시아인 여자 1명, 베트남인 여자 1명, 그리고 한국인 남자 2명과 자주 어울렸다. 특히 시험 기간이 되면 늘 이 4명이 모여 함께 공부를 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인도네시아인 친구에게 점점 관심이 생겼고, 1년 뒤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인 여자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그녀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고, 덕분에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은 화교였지만, 인도네시아 현지인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여자친구에게 놀라며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와~ 발리가 인도네시아 섬이었어?”
여자친구는 나의 무지함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당시 나처럼 발리를 몰디브 같은 독립된 국가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에도 인도네시아를 인도와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장기 체류하는 한국인 인구가 2~3만 명 정도에 불과하기에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중국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4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8년, 인도네시아에서 10년, 어느덧 18년째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외에 머물고 있다.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인도네시아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