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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7년, 인도네시아 13년. 도합 20년을 해외에서 살아온 외노자다.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됐다.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진 못했지만,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방황하던 흙수저

어린 시절은 유복하지 않았다. 가정환경도 좋지 않았고, 부모님의 방치 속에 꽤 오랜 시간 방황했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고, 성적은 당연히 바닥이었다. 지방 사립대에 겨우 들어갔지만 아르바이트만 하느라 수업도 잘 안 들어갔다.

그러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세상이 넓다는 걸 느꼈다. 울산, 부산을 벗어나본 적 없던 내가 처음 서울 땅을 밟은 것도 군 휴가 때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처음으로 '새로운 삶'을 상상했고, 신문마다 쏟아지는 중국 관련 뉴스를 보며 촉이 왔다.

'바로 중국이다.'

전역하자마자 고향 울산으로 내려가 딱 3일 쉬고, 1년 동안 조선소 현장에서 노가다를 뛰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그 돈 전부 들고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아버지는 "또 헛바람 들었냐!"며 대노하셨다.


 

중국에서 살아남기

중국에 도착해보니 자비로 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고,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근데 어쩌겠나. 살아남아야 하니까 죽어라 악착같이 살았다.

통번역 아르바이트, 블로그, 사진 촬영 등 가리지 않고 뭐든 했다. 1년 동안은 하루도 빠짐없이 자면서 중국 라디오를 틀어놨다. 어느 날 라디오를 듣다가 혼자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아, 됐구나' 싶었다.

본과 입학 후엔 장학금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방학마다 한국으로 돌아가 조선소 일을 이어갔는데, 솔직히 그 돈이 없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다. 마지막 1년은 창업에 도전했다가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그래도 실패를 해봐야 뭘 모르는지 알게 된다.

졸업 후엔 중국 대형 게임사에 입사했다. 4,000명 중 유일한 한국인, 첫 월급은 한화 약 80만 원이었다. 아버지는 "당장 때려치우고 돌아와라"고 하셨지만 버텼다.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직급은 빠르게 올랐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들 월급 수준까지 올라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이유

인도네시아로 온 건 아내 때문이었다. 대학 1학년 때 만난 인도네시아인 아내가 중국 생활에 지쳐했고, 한국行도 고려했지만 솔직히 걱정이 됐다. 당시 동남아 여성에 대한 편견,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들. 내 가족이 상처받는 건 원치 않았다.

그렇게 서른 살, 아내 손 꼭 잡고 큰소리쳤다.

"걱정 마. 나는 사막에 떨어뜨려 놔도 살아남아. 니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자."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다. 근데 그 패기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된 인도네시아 생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또 다른 언어, 또 다른 문화, 또 다른 생존 방식. 그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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