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지금의 아내(인도네시아인)와 결혼한 것이다. 나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매우 낮았다. 그 부족한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갔다. 하지만 겉으로는 열정적이고 단단해 보였을지 몰라도, 내면은 늘 불안하고 조급함에 시달렸다.
그런 나의 불안정한 마음을 십수년 동안 안정시켜준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중국 유학 시절, 나에게 그곳은 치열한 생존의 장이었다. 첫 1년 학비는 조선소에서 막노동을 하며 마련했고, 그 이후 생활비도 방학때마다 한국에 돌아가 조선소에서 일하며 벌어야 했다. 3D업종이라 하루도 쉬지 않고 야근, 철야를 하면 한 달에 400~500만 원을 벌 수 있었지만, 중국에서의 유학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학기 중에도 나는 사진 촬영, 블로그 포스팅, 행사 통역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인생에서 "노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었고, 내 젊은 몸은 거의 희생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걸까?"
주변 친구들은 집에서 보내주는 학비와 생활비로 여유롭게 학교를 다녔고, 나는 그들 앞에서 부족하지 않은 척 살며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열정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에게 미안한 점은, 내가 모든 것에 예민하고 항상 날카로운 상태였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아내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내가 일할 때는 절대 연락하지 마. 요즘 드는 생각인데, 네가 내 인생을 방해하는 것 같아!"
나는 일이 있을 때 여자친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4박 5일 동안 출장을 갔을 때도 겨우 한두 번 전화를 했을 뿐이다. 그렇게 일과 공부에만 몰두하는 나를 아내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던 기억이 난다.
"좋은 기회를 만들려면 뭐든 열정적으로 해야 해. 남들보다 몇 배, 몇 십 배는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어!"
그때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넌 어떻게 자랐는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는 너처럼 안 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아."
몇 개월 뒤, 우리는 여자친구의 고향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여행을 떠났다. 2주 동안 아내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만났고, 그제야 아내의 여유로운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게 되었다. 아마 그때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미친 듯이 달릴 때는 잠시 멈춰 쉬게 해주고, 너무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는 뒤에서 나를 밀어주던 사람, 바로 그녀였다.
그렇게 우리는 7년간의 연애 끝에, 2012년 10월 28일 결혼식을 올렸다. 세월이 참 빠르다. 다음 달이면 우리가 만난 지 17년, 결혼한 지 12주년이 된다.
지금도 아내가 나에게 "고마워"라는 한마디만 해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용기가 생긴다.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인도네시아인 아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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